25살 군대에서 전역하고 학교로 복학했다. 복학을 하면 여자친구를 만들어 연애하며 아름다운 캠퍼스 생활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서른 살까지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몰랐다. 여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 방법, 나를 어필하는 방법, 매력을 키우는 방법 등의 세부적인 전략은 고사하고 나란 사람 자체의 문제를 몰랐다.

 

  나와 알고 지낸지 오래 되었거나 내가 진심을 털어놓고 지내는 분들(모두 남자다.) 나에게 이렇게 괜찮은데 왜 여자친구가 없냐는 물음을 많이 건넸다. 립서비스든 뭐든 상관은 없다. 난 그 말을 순진하게 믿고 싶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지금은 부모님의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어. 여자친구가 생기면 데이트 비용이 들테고, 그 비용까지 부모님에게 지원 받을 수 없으니 취업을 하기 전까지 연애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학교 4학년, 거울을 보는데 내 치열이 너무 못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정을 시작했다. 이제는 치아교정기를 끼고 있으니 어느 여자가 이런 못난 놈을 만나겠냐며 대놓고 광고를 하고 다녔다.

 

  그렇게 기다리던 취업에 성공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꿈에 그리던 연애는 또 멀어졌다. 이번엔 여자 만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질 않는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쉬기 바쁘더라.

 

  서른이 가까워질 무렵, 이렇게 보내다가 대학교 1학년 때 만났던 여자친구를 끝으로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는 파악을 못했으나 내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짐작만 있을 뿐이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나의 문제를 말해주면 고쳐볼테니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그리고 소개팅이 있으면 무조건 나에게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국내도서
저자 : 서재근
출판 : 휴먼큐브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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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를 읽으며 나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습관적 생각을 깨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 습관 여섯 번째 진짜 문제를 생각합니다.'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옛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에피소드의 내용은 회사에서 가깝다는 장점 빼고는 맛도 그저 그런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주인이 맞은 편에 커다란 중국집이 생겨 더 장사가 힘들어졌다고 타스케 팀장에게 하소연을 한다. 정말 기존에 있던 중국집의 음식이 맛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맞은 편 중국집이 생겼을 때 한 번쯤 가 볼수는 있겠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까?

 

 

 

 

  돈이 없는 학생이라서, 교정기를 착용한 못난 모습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미래로 보류하고 피했다. 에피소드와 저 그림이 나가 수년간 문제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라는 사람이 매력 없는게 문제였지 돈, 교정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만나면 된다. 아니면 아르바이트, 막노동을 해서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면 된다. 교정기를 꼈다고 정말 보기 싫을 정도로 인물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사실을 인정하면 마음이 아프니까 피했던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는 질문이 잘 못 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에 가려 있는 실제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히 찾는가에 따라 결과 도출이 달라진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진실을 마주할 용기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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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
국내도서
저자 : 엄기호,하지현
출판 : 위고 201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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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을 읽은 계기

 

  내가 사는 공주에는 대형 서점이 없다. 학생들 참고서, 문제집을 파는 작은 서점 뿐. 그래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 책을 사는데, 달랑 한 권만 사기가 번거롭고 아쉽다. 한동안 읽고 싶은 책을 메모했다가 다섯 권 정도 모이면 산다. 이 날은 책의 권수가 약간 모자라는데 너무 읽고 싶은 책이 있어 구매를 서둘렀다. 이 책 저책 둘러보다 자극적인 책의 제목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주황색의 표지에 끌려 구매를 했다.

 

<공부 중독>의 첫 느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공부를 강조해 온 나라다. 관직에 오르기에 필수적으로 공부를 해야하고,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까지 아침, 점심, 저녁 두 시간씩 총 여섯시간을 신하들과 함께 공부를 해야했다. 지금은 더 심한 상황이다. 학생들은 수능을 위해 하루 종일도 부족해서 4당5락이란 말이 생길정도로 열심히 공부에 매달린다. 대학교만 입학하면 공부가 끝났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취업이란 관문이 아직도 남아있다.

  중독이라는 말은 알콜 중독, 니코틴 중독 등 흔히 부정적인 의미를 전할 때 자주 쓰인다. 하지만 우리 생에 평생을 함께 해야 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하는 공부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충되는 의미의 단어들이 어쩌다가 함께 쓰였을까?

 

<공부 중독>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

 

  공부를 '하는 (doing)'게 아니라 '구경'하는 거예요. 교재에 형광펜이 다 칠해져 있다니, 세상에 그런 공부가 어디 있어요? 교과서를 요약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교재인데 그걸 또 형광펜으로 요약까지 해주고, 끝나고 나면 요약정리 또 해주고 핵심문제 또 따로 나오고... 그러니까 계속 구경하는 형태예요. 존 듀이가 말한 대로라면 '언더고잉(undergoing)', 즉 겪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사라져버리는 거죠. 공부 '중독'이라고 하는데 중독될 '실재'는 없어요.
  '돈 많은 게 장땡이다'로 돈을 벌던 사람들이 돈을 통해서 돈을 재생산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했더니 공부, 즉 교육이었다는 거죠. 그렇게 공부에 올인해서 만들어진 사람들이 486세대와 그 이전 세대들이에요. 이들이 갖고 있는 공부에 대한 판타지, 자신들이 경험한, 상당히 실현 가능한 이 판타지를 지금 다시 실현시켜야겠다, 그런데 그게 실현이 안 될 걸 아니까 훨씬 더 강하게, 적어도 내 새끼한테는 실현을 시켜야겠다.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몰빵하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보면 삶이라는 것이 굉장이 허약해지고, 빈약해지고 있는 것이죠. 공부는 삶의 보조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인데, 지금은 거의 공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되었어요. 삶의 영역에서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고 있고, 배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배움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고, 배움이 일어나더라도 계속 불안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럴 바에는 차리리 내가 학원 가서 깔끔하고 매끄럽게 배우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되는 것 같아요. 공부 중독인데 공부가 없어요. 그리고 결국 삶이 사라지고 있는 거죠.

 

  제가 강연을 하면서 좋은 것은, 강연을 함으로써 제가 알게 되는 것이 정말 많기 때문이거든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정리가 되는 경험이 좋아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강연을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공부 중독에 빠진 사람들 중에는 내 공부를 한다는 미명 하에 다른 사람의 공부를 수동적으로 구경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이게 또 하나의 공부 중독이에요. 하물며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공부 중독>을 읽은 후에..

 

  작년 여름, 대학교에 모교에 출강 하시는 형님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 분께서 후배라고 생각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는데, 돌아오는 강의 평가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 평가의 내용은 '수업시간에 수업이나 하시죠. 어쭙잖은 조언하지 마시고.'이다. 이후 학생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수업만 충실히 하신다는 말씀을 전해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지금의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부모의 욕심으로 각종 학원들을 돌며 공부를 한다. 예전의 아이들은 동네 친구들, 형, 동생들과 함께 뛰어 놀며 사회성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며 자랐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그럴 시간도 없이 자란다. 그로 인하여 사회성은 물론 공부 외에는 시간 낭비라 생각하고 자란다.

  그렇게 공부를 하지만 그들의 공부에는 알맹이가 없다. 잘 정리되어 있는 교재를 사용하고, 필기 대신 강사가 강의하기 위해 만든 프리젠테이션 파일에 목숨걸고, 강사가 하는 질문에 시간 낭비 하지말고 빨리 답을 내놓으라 말한다. 스스로 생각을 해 터득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강의를 구경하는 것에 공부를 한다고 최면을 걸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사회까지 이어진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알아가고 연애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역시 커뮤니케이션 학원, 관계 학원 등의 학원에서 배운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처리한 일을 보고해야 하는데 그저 칭얼댈 뿐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못한다. 이것들이 현재 사회의 모습이다.

 

마치며..

 

  486세대라는 우리 부모님들, 그 분들의 성공은 공부를 많이하여 대기업에 취업하면 그것이 성공이었다. 그 성공방식을 달라진 시대에도 적용을 하니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욕심 때문에 공부만 하며 자라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도 모른다. 무엇을 위하여 공부를 하는지 본인도 알지도 못한 채 남들 다 하니까 안하면 불안하여 공부를 계속 한다.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목적이 된 공부를 하고 있다. 연애도 학원에서 배울만큼 사회성을 잃어버리고 따뜻한 정이 사라지는 등 잃는 것이 너무도 많아졌다. 하면 할 수록 악영향을 끼치는 이런 공부, 과연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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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국내도서
저자 : 법륜(Ven.Pomnyun)
출판 : 휴(休) 201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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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를 읽은 계기

 

  2~3년 전부터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여러명의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정해서  독서를 한 후 모여 책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혼자서 책을 읽으면 자기가 살아온 방식대로 편협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다양한 시각이 길러진다.

  서울에서 공주로 내려오며 독서 모임을 찾았다. 2주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 독서모임을 찾았다. 2주 전 모임에서 선정되어 모임 사람들과 나눴던 책이다.

 

<스님의 주례사>의 첫 느낌

 

  '결혼도 하지 못하고 결혼 생활도 안해본 스님께서 주례사를 한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부터 났다. 법륜 스님도 이 질문을 참 많이도 받으셨나보다. 해보지 않아도 다 안다는 무덤덤한 대답으로 일갈하시는 모습이 생각났다. 부부간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서 스님이 어떻게 알까?

  잠시 생각을 해봤다.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이라는 상담회를 브랜드화 시켰다. 거기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해오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상황에 처한 본인이 아니어서 한 발 뒤에서 바라보니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의 주례사>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 

 

  부부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졌다고 흔히 말하지요? 그러나 실제로 부부가 사랑으로 맺어진 경우는 드뭅니다.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예요.

  그럼, 부부는 무엇으로 맺어질까요? 대부분의 경우 극도의 이기심으로 맺어집니다. 인간관계 중에서 이기심이 가장 많이 투영되어 맺어진 관계가 바로 부부관계예요.

- P. 76

  결혼 상대자는 여러가지를 다 봅니다. 왜 일까요? 한 사람 잘 잡아서 평생 덕 보려는 마음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사랑으로 결혼했다고 하지만 그건 착각이고, 마음 속을 들여다 보면 끝없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어요.

- P. 83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다 인사 받으려고만 합니다. 사랑 받으려고만 해요. 이해 받으려고만 하고 도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객꾼으로 떠도는 거예요. 떠돌이 신세로 늘 헐떡거리면서 사는 겁니다. 먼저 주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 P. 271

 

<스님의 주례사>를 읽은 후 느낌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하는 것이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조선시대 아니 더 이전부터 정략 결혼은 존재했었고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했다. <스님의 주례사>는 처음부터 결혼에 대한 프레임을 확 깨버리고 시작한다. 결혼은 인간관계에서 이기심이 가장 많이 투영된 관계라고 스님은 말한다. 왜 그럴까? 바로 상대의 덕을 보기 위해서이다. 상대방을 잘 만나면 힘들게 살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하고 편하게 살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가.

  하지만 그 삶이 과연 좋기만 할까? 상대가 베푸는 것이 있으면 원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받기만 하면 관계의 주도권은 내가 아닌 상대에게 빼앗기게 된다.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한다. 이런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상대가 주는 것을 받지 않고 깨버리면 되는데 예전의 나로 돌아가 불편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발생하는데 무엇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

  모든 것을 받는 손님은 편하다. 인사를 받고, 사랑을 받고, 이해를 받고, 도움을 받기만 하면 편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채워주는 사람을 찾아 떠돌아 다녀야 한다.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다해 이제 떠나라해도 아무 말 못하고 떠나야만 한다.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치며..

 

  20대 초반 연애할 때 나의 반쪽을 찾아 돌아다니고, 나의 연인에게 반쪽이라 불렀다. 책에서 불안전한 반쪽이 되어 나머지 반쪽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온전한 온쪽이 되라고 한다. 온쪽을 다른 말로 하면 홀로서기, 내 삶의 주인되기라 표현할 수 있다. 물론 홀로서기는 외롭고 힘들다. 하지만 손님이 되어 주인이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닐 것인가?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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